풍부한 경험과 탁월한 전문지식 바르고 성실한 명품 세무서비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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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8-03-09 17:19 조회55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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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호 세무법인 프라임 대표/세무사
안연승 차장
세무사(稅務士)는 납세자인 국민과 세무관서인 국가와의 사이에서 납세의무의 성실한 이행을 돕는 한편 납세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공정하고 중립적인 위치에 있는 공공성을 지닌 조세전문가이다. 즉, 세무사는 나라 살림에 쓰이는 세금을 적법하게 징수하고 납부할 수 있도록 국가와 국민 사이에서 교량역할을 담당하는 한편 세무행정의 원활화를 도모하는 공공성을 지닌 조세전문자격사라고 하겠다. 또한 세무사는 복잡하고 어려운 세금문제를 다루는 조세전문가로서 국민의 재산과 권익을 보호하는 최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납세자의 세금을 대신 신고하고 관리해 주는 도우미의 역할 뿐 아니라, 세법지식이 부족한 국민이 부당한 세금부과로 인해 억울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사전예방과 구제에 앞장서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경제규모 증대와 함께 국민이 부담하는 세금의 규모가 점차 커지게 되면서 구미 선진국의 예에서 보듯 가정마다 세무사가 지정되어 각종 세금문제를 전담하게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어 앞으로도 세무사는 국민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전문 직업군이라 하겠다. 오늘은 풍부한 현장 경험과 탁월한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고객들에게 바르고 성실한 명품 세무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세무법인 프라임의 대표 장명호 세무사를 만나 그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믿음과 신뢰의 세무법인 프라임
대통령선거로 인해 각 당의 유세 열기가 뜨겁던, 비 내리는 오후 방문한 세무법인 프라임. 들어서자 보이는 ‘납세자를 맞이하는 마음가짐’이란 글귀가 눈길을 끌었다. 그 중에서도 ‘한 번 친절 기쁨 되고 두 번 친절 믿음 된다’와 ‘열 번을 물어봐도 열한번의 상냥한 답변’ 이란 대목에서 이곳의 책임자가 성품이 따듯한 분일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마주한 장명호 세무사는 기대대로 상냥한 미소를 지닌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는, 50여명이 함께 일하는 세무법인 프라임의 대표였다. 먼저 회사소개 이야기를 들었다.
“저희 세무법인 프라임은 언제나 바르고 성실한 세무서비스를 제공키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22년간 국세청과 산하세무서에서 근무하였고, 1993년 국세공무원 교수를 거쳐 성남세무서 소득세과장을 역임하고 서기관으로 퇴임 후 1997년부터 세무회계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2008년 7월 1일부터는 세무법인으로 전환하여 분당, 시흥, 서울지역에 5개의 지사와 세무사 5명, 공인회계사 2명이 세무회계 서비스에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세무사는 전문지식과 풍부한 실무경험을 토대로 의뢰인의 사업과 재산에 관한 책임 있는 컨설턴트이므로 항상 믿음과 신뢰의 명품 세무서비스를 제공하여야 합니다. 특히 세무사는 국가기관과 국민의 접점에서 일하는 공공적인 성격이 강한 직업이므로 항상 막중한 책임감과 윤리의식으로 무장하여 업무에 임하고 있습니다.”
섬마을 선생님
1949년 전라남도 나주에서 출생한 장명호 세무사는 어린 시절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독자로 태어난 저에게 부모님들께서는 학교선생님이 되길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초등학교 졸업 후 광주사대부중에 진학하였습니다. 그러나 대학 1학년 때 가세가 기울어 학교를 중퇴하고 무안군 교육청에서 임시교사 모집 소식을 듣고 응시, 합격하였습니다. 어쨌든 부모님의 꿈을 이루어 드린 것이죠. 저는 홍도에 보내달라고 했지만 그곳에는 부부교사가 근무 중이라 안 된다며 흑산본도 분교에 발령을 받았습니다. 저는 5,6학년 합반수업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수업을 하다보면 어디서 우드득 우드득 소리가 계속 들렸습니다. 알고 보니 생활이 어렵던 시절이라 배고픈 학생들이 생고구마를 먹는 소리였습니다. 저녁이 되어 동네처녀들이 놀러오면 당시 젊은이들에게 유행하던 노래도 가르쳐주며 섬마을선생님으로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아침에 보면 누군가 몰래 툇마루에 고구마 등 먹을 것을 잔뜩 두고 가곤 했습니다. 참 낭만적인 시절이었죠. 당시 정식교사양성소을 이수했다면 평생 순박한 섬마을선생님으로 나름의 좋은 인생을 살았을 듯합니다.”
세무업무와의 인연
섬마을선생님으로서의 직분을 마치고 서울로 상경하여, 방송통신대학을 졸업한 후 공무원시험 공부에 힘쓴 장명호 세무사는 1976년도에 현재의 7급 공무원인, 4급 을류 일반 행정직 공채에 합격하여 세무부서로 발령받으면서 세무업무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1976년 2월 남부세무서 근무를 시작으로 20여년 이상 국세청에 몸담게 되었습니다. 26살의 조금은 늦은 나이에 시작한 공무원 생활이었지만 시장상인부터 대학교수, 대기업 총수 등의 다양한 삶을 접하며 보고 배울 수 있는 보람 있는 업무였습니다. 제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와 지금의 세무행정은 180도 변신한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 냈습니다. 세무공무원들의 강압적인 자세는 당연한 사라졌고, 전자세금계산서 등 세계적 수준의 데이터베이스를 갖춘 선진국 수준의 조세행정을 이루어냈다고 믿습니다. 또한, 대한민국 국민의 납세율 역시 전 세계 최고수준이라 생각됩니다. 자진신고에 의한 납세가 95%이상이고, 매년 세수규모는 8% 이상 신장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발전의 원동력인 셈입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IMF때 금 모으기 행사와 현재 재정위기에 놓인 그리스 국민들의 행동은 참 대비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세무행정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 냈지만, 업무 특성상 유혹이 뒤 따르는 자리였다고 장 세무사는 회상한다.
“한번 유혹에 넘어간다면 패가망신할 수도 있는 위험한 업무이기도 합니다. 가끔 유혹을 못 이겨내어 교도소에 수감된 옛 동료들을 보면, 그들 가정과 가족들의 얼마나 비참한 지경까지 추락하지는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적법한 조사를 실시하여 세금을 부과할 때에도 큰 타격을 받고 괴로워하는 납세자를 보면, 저도 마음이 아파 어떤 날은 잠이 오지 않을 지경이었습니다. 좀 더 공무원생활을 이어갔더라면 세무서장도 될 수 있었겠지만, 47살의 조금은 이른 나이에 퇴직하여 1997년 7월 1일에 세무사로 개업하게 되었습니다.”
로타리안으로 봉사는 큰 즐거움입니다.
장명호 세무사는 국제로타리 3600지구 직업봉사위원장으로도 봉사하고 있다.
“2008~2009년도에는 성남모란로타리클럽의 회장을 지냈고, 지난해에는 로타리 청소년교류위원장으로 일본을 방문하기도 하고, 일본의 청소년들을 초대하여 홈스테이 등 한국문화를 알리는 봉사도 열심히 진행했습니다. 현재도 자매클럽인 일본의 츠꾸이쥬오로타리클럽과 함께 네팔, 몽고 등 개발도상국에 대한 식수 개선사업과 어린이들을 위한 컴퓨터 지원사업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섬마을선생님에 대한 향수였는지, 장명호 세무사는 교사로 근무하던 박추자 여사와 결혼을 하여 슬하에 단란한 1남2녀를 두고 있다고 한다.
“큰딸은 일본 도쿄에서 메이크업 스타일리스트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여 개업하여 활동 중 한화그룹에 다니는 훌륭한 청년을 만나 금년 9월에 결혼하였습니다. 그리고 저희 부부는 벌써 올해로 결혼 34주년을 맞았습니다. 교직에서 퇴직하여 아직도 건강하게 가정을 꾸리고 있는 아내의 노력이 있어 현재의 제가 있다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세무사로서 막중한 일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것도 모두 아내의 공으로 돌리고 싶습니다.”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여 몇 번이고 난중일기를 읽었다는 장 세무사의 꿈은 60이 넘은 나이지만 Speaking이 부족한 영어를 정복하여 세무사로서 계속 업그레이드를 이루어내고 싶은 것이라 한다. 은퇴 후에는 제2의 고향인 성남시에서 봉사활동에 더욱 힘쓰겠다는 장명호 세무사의 노력에 힘입어 대한민국이 더욱 밝고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하여 본다.
[출처] 장명호 세무법인 프라임 대표/ 세무사|작성자 ysahn7777
안연승 차장
세무사(稅務士)는 납세자인 국민과 세무관서인 국가와의 사이에서 납세의무의 성실한 이행을 돕는 한편 납세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공정하고 중립적인 위치에 있는 공공성을 지닌 조세전문가이다. 즉, 세무사는 나라 살림에 쓰이는 세금을 적법하게 징수하고 납부할 수 있도록 국가와 국민 사이에서 교량역할을 담당하는 한편 세무행정의 원활화를 도모하는 공공성을 지닌 조세전문자격사라고 하겠다. 또한 세무사는 복잡하고 어려운 세금문제를 다루는 조세전문가로서 국민의 재산과 권익을 보호하는 최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납세자의 세금을 대신 신고하고 관리해 주는 도우미의 역할 뿐 아니라, 세법지식이 부족한 국민이 부당한 세금부과로 인해 억울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사전예방과 구제에 앞장서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경제규모 증대와 함께 국민이 부담하는 세금의 규모가 점차 커지게 되면서 구미 선진국의 예에서 보듯 가정마다 세무사가 지정되어 각종 세금문제를 전담하게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어 앞으로도 세무사는 국민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전문 직업군이라 하겠다. 오늘은 풍부한 현장 경험과 탁월한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고객들에게 바르고 성실한 명품 세무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세무법인 프라임의 대표 장명호 세무사를 만나 그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믿음과 신뢰의 세무법인 프라임
대통령선거로 인해 각 당의 유세 열기가 뜨겁던, 비 내리는 오후 방문한 세무법인 프라임. 들어서자 보이는 ‘납세자를 맞이하는 마음가짐’이란 글귀가 눈길을 끌었다. 그 중에서도 ‘한 번 친절 기쁨 되고 두 번 친절 믿음 된다’와 ‘열 번을 물어봐도 열한번의 상냥한 답변’ 이란 대목에서 이곳의 책임자가 성품이 따듯한 분일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마주한 장명호 세무사는 기대대로 상냥한 미소를 지닌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는, 50여명이 함께 일하는 세무법인 프라임의 대표였다. 먼저 회사소개 이야기를 들었다.
“저희 세무법인 프라임은 언제나 바르고 성실한 세무서비스를 제공키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22년간 국세청과 산하세무서에서 근무하였고, 1993년 국세공무원 교수를 거쳐 성남세무서 소득세과장을 역임하고 서기관으로 퇴임 후 1997년부터 세무회계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2008년 7월 1일부터는 세무법인으로 전환하여 분당, 시흥, 서울지역에 5개의 지사와 세무사 5명, 공인회계사 2명이 세무회계 서비스에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세무사는 전문지식과 풍부한 실무경험을 토대로 의뢰인의 사업과 재산에 관한 책임 있는 컨설턴트이므로 항상 믿음과 신뢰의 명품 세무서비스를 제공하여야 합니다. 특히 세무사는 국가기관과 국민의 접점에서 일하는 공공적인 성격이 강한 직업이므로 항상 막중한 책임감과 윤리의식으로 무장하여 업무에 임하고 있습니다.”
섬마을 선생님
1949년 전라남도 나주에서 출생한 장명호 세무사는 어린 시절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독자로 태어난 저에게 부모님들께서는 학교선생님이 되길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초등학교 졸업 후 광주사대부중에 진학하였습니다. 그러나 대학 1학년 때 가세가 기울어 학교를 중퇴하고 무안군 교육청에서 임시교사 모집 소식을 듣고 응시, 합격하였습니다. 어쨌든 부모님의 꿈을 이루어 드린 것이죠. 저는 홍도에 보내달라고 했지만 그곳에는 부부교사가 근무 중이라 안 된다며 흑산본도 분교에 발령을 받았습니다. 저는 5,6학년 합반수업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수업을 하다보면 어디서 우드득 우드득 소리가 계속 들렸습니다. 알고 보니 생활이 어렵던 시절이라 배고픈 학생들이 생고구마를 먹는 소리였습니다. 저녁이 되어 동네처녀들이 놀러오면 당시 젊은이들에게 유행하던 노래도 가르쳐주며 섬마을선생님으로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아침에 보면 누군가 몰래 툇마루에 고구마 등 먹을 것을 잔뜩 두고 가곤 했습니다. 참 낭만적인 시절이었죠. 당시 정식교사양성소을 이수했다면 평생 순박한 섬마을선생님으로 나름의 좋은 인생을 살았을 듯합니다.”
세무업무와의 인연
섬마을선생님으로서의 직분을 마치고 서울로 상경하여, 방송통신대학을 졸업한 후 공무원시험 공부에 힘쓴 장명호 세무사는 1976년도에 현재의 7급 공무원인, 4급 을류 일반 행정직 공채에 합격하여 세무부서로 발령받으면서 세무업무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1976년 2월 남부세무서 근무를 시작으로 20여년 이상 국세청에 몸담게 되었습니다. 26살의 조금은 늦은 나이에 시작한 공무원 생활이었지만 시장상인부터 대학교수, 대기업 총수 등의 다양한 삶을 접하며 보고 배울 수 있는 보람 있는 업무였습니다. 제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와 지금의 세무행정은 180도 변신한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 냈습니다. 세무공무원들의 강압적인 자세는 당연한 사라졌고, 전자세금계산서 등 세계적 수준의 데이터베이스를 갖춘 선진국 수준의 조세행정을 이루어냈다고 믿습니다. 또한, 대한민국 국민의 납세율 역시 전 세계 최고수준이라 생각됩니다. 자진신고에 의한 납세가 95%이상이고, 매년 세수규모는 8% 이상 신장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발전의 원동력인 셈입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IMF때 금 모으기 행사와 현재 재정위기에 놓인 그리스 국민들의 행동은 참 대비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세무행정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 냈지만, 업무 특성상 유혹이 뒤 따르는 자리였다고 장 세무사는 회상한다.
“한번 유혹에 넘어간다면 패가망신할 수도 있는 위험한 업무이기도 합니다. 가끔 유혹을 못 이겨내어 교도소에 수감된 옛 동료들을 보면, 그들 가정과 가족들의 얼마나 비참한 지경까지 추락하지는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적법한 조사를 실시하여 세금을 부과할 때에도 큰 타격을 받고 괴로워하는 납세자를 보면, 저도 마음이 아파 어떤 날은 잠이 오지 않을 지경이었습니다. 좀 더 공무원생활을 이어갔더라면 세무서장도 될 수 있었겠지만, 47살의 조금은 이른 나이에 퇴직하여 1997년 7월 1일에 세무사로 개업하게 되었습니다.”
로타리안으로 봉사는 큰 즐거움입니다.
장명호 세무사는 국제로타리 3600지구 직업봉사위원장으로도 봉사하고 있다.
“2008~2009년도에는 성남모란로타리클럽의 회장을 지냈고, 지난해에는 로타리 청소년교류위원장으로 일본을 방문하기도 하고, 일본의 청소년들을 초대하여 홈스테이 등 한국문화를 알리는 봉사도 열심히 진행했습니다. 현재도 자매클럽인 일본의 츠꾸이쥬오로타리클럽과 함께 네팔, 몽고 등 개발도상국에 대한 식수 개선사업과 어린이들을 위한 컴퓨터 지원사업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섬마을선생님에 대한 향수였는지, 장명호 세무사는 교사로 근무하던 박추자 여사와 결혼을 하여 슬하에 단란한 1남2녀를 두고 있다고 한다.
“큰딸은 일본 도쿄에서 메이크업 스타일리스트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여 개업하여 활동 중 한화그룹에 다니는 훌륭한 청년을 만나 금년 9월에 결혼하였습니다. 그리고 저희 부부는 벌써 올해로 결혼 34주년을 맞았습니다. 교직에서 퇴직하여 아직도 건강하게 가정을 꾸리고 있는 아내의 노력이 있어 현재의 제가 있다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세무사로서 막중한 일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것도 모두 아내의 공으로 돌리고 싶습니다.”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여 몇 번이고 난중일기를 읽었다는 장 세무사의 꿈은 60이 넘은 나이지만 Speaking이 부족한 영어를 정복하여 세무사로서 계속 업그레이드를 이루어내고 싶은 것이라 한다. 은퇴 후에는 제2의 고향인 성남시에서 봉사활동에 더욱 힘쓰겠다는 장명호 세무사의 노력에 힘입어 대한민국이 더욱 밝고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하여 본다.
[출처] 장명호 세무법인 프라임 대표/ 세무사|작성자 ysahn7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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